
1984년,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했던 이야기를 돌아본다. 친구를 통해 주식시장을 접하고 투자에 나서며 겪었던 기대와 시행착오를 기록했다.
낯설기만 했던 신입사원 시절
1984년, 나는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신입직원 연수를 받고 마지막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는 자신감을 안고 지점에 출근했지만, 막상 모든 일이 낯설었고 손님을 대하는 것이 무서웠다.
손님이 나타나면 마치 통화 중인 척 수화기를 들고 아무 번호나 돌리곤 했다. 옆에 있는 고참이 대신 손님을 응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어떤 때는 손님이 다가오는 기색이 보이면 서류를 찾으러 가는 척 문서고를 들락거리기도 했다.
보통 3개월쯤 지나면 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1년 정도가 되면 슬슬 다른 업무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선배들에게 그 성격과 강도를 물어보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장에 들어간 그해, 대학 동기들의 망년회 자리가 있었다. 다들 신입 1년 차의 애환이 많았다. 다니는 회사가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상사와 동료가 어떻다 하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 자리에는 마침 증권회사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망년회, 친구들 사이에서 불붙은 주식 이야기
당시 나는 주식시장이 어떤 것인지 전혀 문외한이었다. 신문에서 어느 주식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기사를 보면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다니던 회사에서도 주식투자를 하는 직원은 사고의 위험이 있다며 경계하던 터라, 내가 주식투자를 하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1984년 말, 코스피가 전년 대비 17% 오르는 등 주식시장은 한 해 내내 뜨거웠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식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운 좋게도 그 시장 한복판에 있는 친구가 우리 자리에 있었으니, 질문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내년에도 증권시장이 좋을 것 같은가? 무슨 종목이 좋은가? 한두 개만 추천해 줘라. 건설주가 내년에도 좋으니? 증시가 활황이면 증권주가 좋다던데, 어느 증권주가 좋은지 알려줘라. 근데 너무 투기판 아니니?”
대화는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어느 친구는 건설주로 대박을 쳤다며 자랑을 늘어놓았고, 다들 그 성공담에서 한 수 배워 보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마음속에 피어난 조바심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내 자신이 너무 게으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돈을 벌려고 뛰어드는데, 나는 그저 회사 생활에만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막상 주식투자를 하려니 모아둔 돈이 없어 막막하고 답답했다.
새해가 되자 주식시장은 이른바 ‘3저 호황’(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힘으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덜컥 겁이 났다. 이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회사 일이 바빴지만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증권사 객장에 들러 시세판을 훔쳐보곤 했다.
객장 안은 나이 든 어르신들이 담배를 피우며 시세판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풍경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빨간 숫자가 많으면 객장 전체가 시끌벅적했고 파란 숫자가 많으면 여기저기서 조용한 신음이 들렸다. 회사 인사부 직원들이 가끔 증권사 객장을 순찰하며 직원을 찾는다는 소문이 있어, 대놓고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저 구석에서 10여 분 분위기만 살피다 돌아서곤 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증권 투자에 대한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때였다.
드디어 계좌를 열다
마침내 나는 주식투자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 약속을 잡았다.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는 손님을 상대해야 해서 점심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겨우 식사를 마치고 다방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뿐이었다. 나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질문의 답을 들어야 했지만, 결국 요지는 하나였다. “주식시장이 이렇게 활황인데, 지금 시작해도 돈을 벌 수 있을까?”
친구는 벌 확률이 잃을 확률보다 높다고 했다. 당장 자기 회사에 계좌를 개설하러 가자고 했지만, 나 역시 시간에 맞춰 돌아가야 했기에 다음 날 점심시간에 계좌를 열기로 했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며칠 전 회사에서 받은 생활안정자금 대출금을 수표로 챙겨갔다. 1년 치 월급에 상당하는 금액이었다. 잘만 투자하면 여름 휴가비 정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좌 개설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입금 창구는 붐볐고, 돈을 넣고 빼는 사람들로 직원들은 정신이 없었다. 마침내 증권거래 통장에 돈을 입금하고 친구에게 계좌를 열었다고 알렸다. 친구는 “이제 잘해 보자”며 종목 몇 개를 추천해 주었다. 나는 주문 넣는 법조차 몰라 친구에게 배워가며 세 종목을 샀다. 증권주, 건설주, 은행주. 나름의 분산투자였다.
오르면 웃고, 내리면 우울했던 나날들
그날부터 정신은 온통 증권시장에 쏠려 있었다. 창구에서 손님 업무를 처리하다가도 은연중에 주식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주식으로 이익을 봤다는 손님이 있으면 그 비법을 알아내려고 귀를 기울였다. 신문 증권면에서 내 종목의 종가를 찾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깨알 같은 글자로 빼곡한 시세표에서 내 종목을 찾으려면 한참이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어제의 종가일 뿐, 현재 주가가 궁금해 못 견딜 지경이었다.
점점 점심을 서둘러 먹고 증권사 객장에서 시세를 확인한 뒤 사무실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주가가 오르면 기분이 좋았고, 떨어지면 기분이 나빴다. 며칠 오름세가 이어지면 저녁 식사 자리도 길어졌고,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반대로 며칠씩 내려가면 모든 게 우울했고, 동료들과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손실, 그리고 친구에게 맡긴 일임매매
두 달쯤 지났을 때, 내 투자금은 이미 손해를 보고 있었다. 종목을 추천해 준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문제가 많았다. 철저한 분석이나 연구도 없이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를 마치 극비 정보라도 되는 양 믿고 사고팔았다. 대출금 이자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만 조급해져, 당장 이익이 날 것 같은 종목만 찾아다녔다.
더구나 사무실에서 대놓고 매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종목을 추천받고 매매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는 직원들의 주식투자를 극도로 꺼렸다. 혹시라도 주식투자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잠재적 사고자’로 분류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실제로 과도한 주식투자에 빠져 회삿돈에 손을 댔다가 징계를 받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런 이들의 논리는 대개 간단했다. 며칠 투자해서 돈을 벌면 이익금만 챙기고 회삿돈은 몰래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십중팔구는 방향이 반대로 흘러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야 말았다.
결국 나는 내 증권 투자를 친구에게 맡기기로 했다. 매일 주가에 신경 쓰는 일에도 지쳤고, 동료들 눈치를 보며 몰래 전화로 매수·매도 주문을 속삭이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친구는 곤란한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강하게 부탁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다만 사고팔 때 종목만 알려 달라. 이유는 묻지 않겠다.” 몇 번이고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다짐한 끝에 친구의 승낙을 받아냈다. 40여 년 전만 해도 이른바 ‘일임매매’는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증권사 직원이 고객 돈을 빼돌려 달아나지만 않는다면, 증권사들은 고객 편의라는 명분으로 일임매매를 눈감아 주던 시절이었다.
친구는 친절했다. 사고파는 종목을 알려주었고, 때로는 그 결정의 이유까지 설명해 주었다. 한동안 계좌는 조금씩 손실을 회복해 나갔고, 나는 안도했다. 매번 전화하기도 민망해서 가끔씩만 연락해 상황을 확인했다. 친구가 매수했다는 종목의 시세를 매일 확인했는데, 한동안 그 주식은 탄력을 받아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그러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주가가 빠지면 어떡하나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매도하자고 했다. 그런데 친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미 그 종목은 팔고 다른 종목으로 갈아탔다는 것이었다. 이익은 조금 봤다고 했지만, 내가 속으로 계산했던 예상 이익과는 큰 차이가 있어 못내 섭섭했다. 나와 상의라도 하고 팔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친구가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새로 산 종목을 고른 이유를 물어보는 데 그쳤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계속 아침 신문에서 그 종목의 시세만 추적했다. 며칠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 며칠 하락하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종목도 이미 다른 것으로 갈아탔다고 했다. 손해는 조금 났지만 갈아타기를 잘한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며칠 동안 이미 팔아치운 종목의 시세만 들여다보고 있었던 내 모습이 한심하고 황당했다. 그 뒤로는 아예 몇 주씩 확인조차 하지 않고, 이미 팔린 지 오래된 종목만 계속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문득 매매가 너무 잦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권회사가 성과급을 많이 준다는 보도를 본 적도 있었다. 성과급이 실적에 따라 정해지니, 수수료를 많이 벌기 위해서라도 매매를 자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도 별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 투자의 교훈
결국 나의 첫 투자는 손해로 끝났다. 사고판 종목 가운데 그 뒤로도 꾸준히 오르던 종목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실적이 좋은 종목을 잘 골라 놓고 꾹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익을 본다는 진리를, 그렇게 손해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제시 리버모어(Jesse Livermore)가 말한 그대로였다. “엉덩이가 무거워야 성공한다.”

